심해에 사는데 심해어가 아닌 이유가 무엇인가. 그건 너무 심한 일이다. 머리에 작은 불빛 같은 것을 달고 다니는 심해어가 되고 싶다. 딱히 중요한 이유는 없다. 내가 아는 심해어는 그것뿐이고 혹시나 내가 모르는 심해어가 되면 곤란할 것 같아서. 작은 불빛을 깜빡거리면서 나는 심해의 언어를 익힐 것이다. 외로우면 왼쪽 어깨가 아픈 법이라는 말을 할 것이다. 깊은 바다의 어둠 속에서 어둠의 한 줌도 안 되는 불빛으로 할 것이다. 아무에게도 안 보이는 말을 하면서 어둠을 여러 색깔로 만드는 것이 심해의 규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