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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있던 날이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배를 타는 수학여행은 금지한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나는 내 고등학교 때가 떠올랐다. 갑자기 점심 시간에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선배 언니가 떨어졌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커튼을 쳤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다. 밖에서는 기간제 교사들이 청소를 했다. 자신이 가르쳤을 학생의 피를 씻는 일을 했다. 우리반은 다음 날 유학 가는 수학부장을 축하하는 파티를 했다. 우리가 나쁘다고 생각하고 나쁘다고 이야기하면서 나쁘게 축하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뉴스에는 그 언니가 판타지 소설을 읽었네 마네 하는 들을 필요도 없는 뉴스가 담임선생님의 커다란 엉덩이와 함께 지나갔다. 이것으로 이야기가 끝이라면 좋았겠지만.
다음날 화장실과 교실 창문에 창살이 달렸다. 위에 있는 창문은 못 열게 잠가두었다. 그 다음 해에 너무 덥다고 하자 농담이랍시고 너희 안 죽을거지?라고 말하면서 살짝 열어주는 선생님이 있었다. 그 언니의 엄마가 몇 번이고 학교에 찾아왔다. 전단지 같은 것을 나눠주기도 했고 문 앞에서 울기도 했다. 학교가 택한 방법은 달래고 걱정하는 게 아니라 경찰차를 부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시끄럽게 울면 수업에 방해가 되니까. 학생들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니까. 어떻게든 뉴스에 나온 판타지 소설 같은 판타지 소설을 읽었다는 이야기 말고 원인을 찾으려 딸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몇 번이고 학교에 와서 몇 번이고 경찰차를 타고 나갔던 그 언니의 엄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장례를 치른다고 했다. 이유를 알았을지 몰랐을지 모르겠다. 쉬는 시간 종이 치든 말든 우리는 나갈 수가 없어서 만날 수가 없었으니까. 들리는 말로는 따돌림을 당했다고 했지만, 사실 잘 와닿지 않는 이유였다. 왜냐면 이 학교에서는 그런 것도 다 공부에 방해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의식 같은 건 잘 모르지만 죽은 장소를 관이 지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날은 방송수업을 할 시간이 아닌데 방송수업을 했다. 커튼을 치고 불을 켜도 어두운 교실에서. 모르는 사이인 우리도 공부를 했고, 아는 사이였을 선배들도 공부를 했다. 영어 지문을 읽고 시험에 낼 거라는 문제에 별표를 쳤다. 선생님들은 순번을 정해서 부조 같은 걸 내고 오는 듯 했다. 봉투도 없이 뒷주머니에서 지폐를 빼서 달려가는 선생님이 보였다. 애도하고 싶어하는 우리의 마음 같은 것은 깡그리 무시되었다. 그런 것은 공부에 방해되는 것이니까. 커튼으로 가려놓았지만 우리는 무서웠고 겁이 났다. 내가 학교에서 만약 죽는다면 나는 커튼 밖의 사람이 될 것이다.
창살을 다는 것은 자살을 막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하는 자살을 막는 것이다. 배를 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고를 막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하는 활동에서의 사고를 막는 것이다. 그것은 교육인가. 학교가 책임지지 않는 범위에서는 사고가 허용되었다. 교실에 가만히 앉혀 무사히 졸업을 시켜 학교 밖으로 내보내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학교인가. 그런 것이 어떻게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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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작년 16일은 아는 이가 죽은 날이라고 한다. 영정사진이 너무나 이 세상에 없었던 것 같은 사진이라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기억만 기억에 남고 사진은 너무나 거짓말 같아서 잊어버리고 말았다. 언제 그런 사진을 찍어두고 있었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만난 적은 적지만 같이 고기를 먹은 적이 있다. 여럿이 둘러앉은 테이블에 하필 나와 그가 앉았는데 둘 다 고기 굽는 것에 서툴렀다. 구성주의적 관점이라며 과정이 중요하다며 이상한 드립을 쳐 가며 그에게 집게며 가위를 쥐어주고 칭찬을 곁들였다. 그리고 후반에는 정말로 꽤 능숙하게 고기를 굽게 되어서 재밌는 날이 되었다. 그 후에 또 언제 만났는지 모르겠다. 그게 마지막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것이 가장 인상깊은 기억이다. 그리고 그는 그 날 이후에도 종종 고기를 굽는 때가 생기면 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했었다고 한다. 그것과 그가 죽은 날과 그것이 발견된 날이 다르다는 점이 가장 마음 아프다. 그리고 이것과 그의 체크무늬 가방이 예뻤다는 것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