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아주 많이 고픈 당나귀가 있었어요. 운 좋게 커다란 건초더미를 두 개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둘 다 똑같은 거리에 있는 거예요. 이 바보 당나귀는 가운데 서서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을 못하고 결국은 굶어 죽었대요. 이 이야기는 철학자 뷔리당이 인간의 자유의지의 무력함을 조롱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군요. 모든 조건이 똑같고 우리가 오직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순간에, 우리는 생각만큼 의지를 잘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시인의 속마음도 뷔리당과 비슷해요. 나의 의지는 나만의 것이다. 나는 맘대로 눈동자를 깜박이고 담배를 피우고 내 맘대로 거리로 나간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나의 의지란 얼마나 무력한가요. 사실 나를 거리로 나가게 한 것은 거리에서 만난 나를 어쩌면 당신이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이렇게 계속 담배를 피우도록 만드는 건 내 말귀를 못 알아듣는 당신. 내 인생은 우두커니 불빛을 맞고 서있을 뿐입니다. 당신이 자꾸 껐다 켰다 해대는 감정의 가로등에서 내 의지와 무관하게 쏟아지는…. 시인(진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