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4. 20:42
문을 열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자 내 앞에 문이 나타났다
손잡이가 고장난 문이었다 세 바퀴를 연거푸 돌고서야 멈췄다 손잡이를 빙글빙글 돌리다가 고장나지 않은 문을 열고 싶다고 다시 생각했다 문은 이번에도 생겨주었다 다만 내가 여는 방식을 모르는 문이었다 망연하게 앉아있다가 내가 열 수 있는, 고장나지 않은 문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 문 두 개가 갑자기 입을 모아 그건 소원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 소원이란건 뭐냐고 물었지만 문은 다시 입을 다물고 고장난 손잡이를 가진 문과 여는 방식을 모르는 문으로 돌아갔다 소원이란 간단해야 하는걸까 복잡하면 이루어지지 않는걸까 아니면 완벽하면 안되는걸까 납작납작한 소원만이 납작납작하게 이루어지는걸까
결국 다른 문이 생겨나지 않아 반대편으로 몸을 돌려 걸었다 걸으면서 나도 네가 눈을 원하면 눈을 주고 물을 원하면 물을 주고 밤을 원하면 밤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밖의 것을 원하면 그 밖의 것을 주고 싶다고도 생각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폭설이나 폭우가 내리면 어쩌지 아주 오랜 밤이 계속 되면 어쩌지 겁이 나기 시작했지만 문도 문으로 돌아간 지금은 시작이 없구나 잠깐만 주저앉아야지 무릎에 얼굴을 포개고 한참 앉았다
Posted by 다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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